대한민국의 애국심 그리고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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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도덕성, 정치인 인기의 기준, 국민의 이중성

알레스테어 매킨타이어 ‘서사적 자아’

: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야기하는 동물이다. 즉,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먼저 내가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지를 알아야한다. 나 혼자서는 절대로 선을 추구할 수도, 선행을 할 수도 없다. 우리는 모두 특수한 사회적 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 자신의 상황을 인식한다. 나는 누군가의 자녀이자, 어떤 도시의 시민이며 어떤 씨부족이나 부족, 국가의 일원이다. 따라서 내게 이로운 것은 이 역할들로 맺어진 사람들에게도 이로워야 한다. 나는 내 가족, 내 도시, 내 부족, 내 국가로부터 빚과 유산, 기대와 의무를 물려받은 존재이다. 이렇게 내 삶에 주어진 것들이 내 도덕의 출발점이며 내 삶에 도덕적 특수성을 부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라고 말했습니다.

매킨타이어는 노예제도는 내가 한 일이 아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왜 현대 나에게 묻느냐는 이들처럼 역사적 기억상실증은 모두 일종의 도덕 포기행위라고 지적하였습니다.

 

도덕성. 위의 이야기는 하버드의 가장 인기있는 강의 마이클 샌델의 ‘정의’중 11강에 나왔던 ‘충성의 딜레마’에 나온 내용인데요. 이 이야기를 가지고 많은 하버드 생들이 토론을 하였죠.

‘대한민국의 국민성은 이중적이다 ‘?라는 표현으로 글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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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심은 의무인가?”?라는 이야기인데요. 대한민국은 어느 국가보다도 ‘애국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입니다. 가족 책임, 연대 책임, 국가 책임은 필수요, 부모의 죄는 곧 자식의 죄이기도 하며, 부모의 훌륭한 행동은 곧 그 자식의 평판으로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국가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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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을 반대했던 이유는 ‘전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기 때문이고,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유는 ‘전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기 때문이고?매국노의 자식은 영원히 매국노이고, 독립운동가의 아들은 영원히 독립운동가의 아들입니다. 아버지를, 내 부모를, 내 친척을, 내 소속을 자랑스러워하기도 하고 부끄러워서 말하는 것을 쉬쉬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소속으로써 얻는 이익은 누구보다도 반대하고 비판하는것, 사실 대한민국 국민들이기도 합니다.

?’아버지가 진 빚을 내가 왜 값아야 하는가? 우리는 부모를 선택한 적이 없는데.’,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나는 내 부모를 고른 적이 없다.’, ‘나는 남들보다 왜 뒤에서, 왜 어렵게 시작해야하는가?’, 이런 생각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많은 분들이 해보신 적 있을 꺼라고 생각합니다.?

‘다시말해, 우리는 이중적입니다.’ 유리한 소속에 속해 있으면 즉, 소속때문에 생긴 이득이 있다면 아무 말없이, 당연한 듯이 인생을 살아가지만, 불리한 소속 다시말해 내가 내 소속때문에 진 빚이 있다면 그것을 못견뎌 한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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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위안부, 2차 세계대전 등의 사과를 그 후손들에게 요구하고, 박정희 대통령의 잘못된 부분은 그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요구합니다. 나치의 유대인학살은 독일 국민들이 평생 안고가야할 죄라고 주장하는 것도 대한민국 국민성의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애국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내 스스로 개인적인 도덕성이 충분하다면, ‘국가적 사명, 애국심’이란 표현은 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자를 선택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애국심을 가져야 한다구요.

자 그런데, ‘대한민국 군대, 군대를 무조건 가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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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이기에 ‘2년’의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위에서 말한 매킨타이어의 ‘서사적 자아’라는 생각과 일치하는 겁니다.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반대되는 것이죠.

 

우리는 국가, 그리고 부모를 고르지 않았습니다. 그 국가의 책임을 시민들은 져야할까요? 가족의 책임을 자식들이 져야하나요? 그게 아니라면, ‘나는 부모를 고르지 않았다. 나는 국가를 고르지 않았다. 내 스스로 도덕 적이라면 구지 애국심이라는 잣대로 내 도덕성의 여부를 따질필요는 없다’라고 생각하나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원칙이, 확고한 원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성장하기 위해서, 살기 좋은 곳이 되기 위해서는 ‘훌륭한 시민’들이 필요합니다. ‘훌륭한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계속 말했던 ‘매킨타이어의 서사적 자아’에 동의하는지 동의 하지 않는지에 대한 확연한 생각, 즉 원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원칙을 선택한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하지요. 그래야 그 원칙을 가지고 좋은 국가가 되기위한 기본적인 ‘법’을 세우고, 토론을 통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좋은 의견들이 많이 나올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인기있는 정치인들의 인기 기준은 무엇일까요? 정치인의 도덕성일까요? 미디어를 통해서 보는 정치인에 대한 도덕 여부는 절대 진실로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약자로부터 돈을 뺏는 것을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을 뺏는 것 자체가 도덕적으로 악하다라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너무 배가고파 50원이 부족합니다. 내가 50원을 주는 행동은 도덕적으로 선한 행동인가요? 40원을 주는 것은 어떨까요, 돈을 주지 않는 것은 악한 행동인가요?

대한민국 정치인의 인기의 기준은 50원을 주지 않는 행위를 들키면 안되는 것같습니다. 정치인은 애국심이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책임이 있는 시민이기 때문이죠. 도덕적으로 선해서만은 안되고, 애국심이 반드시 있는 매킨타이어의 생각과 일치하는 사회를 구현시키기 위해서 책임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대통령은 ‘박정희’전 대통령의 선택에 대해서 사과를 해야하는 것 같습니다. (제 의견이 아니라 미디어에서 보는 정치는 최소한 그렇게 보입니다)

 

어느 것도 옳고 그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중적’인 것은 줏대가 없다고 말할 수 있고, 줏대가 없다는 것은 목표가 없다고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흑과 백으로 나뉘어 흑백논리를 하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유리할 때에는 소속을 이야기하고, 불리할 때에는 소속을 회피하는 것은 일관적이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훌륭한 시민’들은 ‘훌륭한 국가’의 가장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훌륭한 시민’은 꿈꾸는 사회가 있습니다. ‘훌륭한 시민’이 꿈꾸는 사회와 ‘정치인’이 꿈꾸는 사회가 같을 때 지지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자에게 50원을 주는 행위를 보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요.

아무것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애국심은 필수일 수도 있고, 필수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애국심은 의무인가요? 선택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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